몇번 글을 썼는데 70,80 강북은 영훈과 대일 기수가 같고
영훈고 10개반 , 대일고 15개반 77년엔 서울대 각각
60명, 100명 합격시켰습니다.
빛나는 1학군이란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같은 1학군 서라벌고도 서울대 100명 이상 보냅니다.
당시 1학군에서 딸리는 신일고는 20명 정도......
강남 영동고와 여의도고도 기수가 영훈, 대일과 같은데
당시 서울대 진학은 형편없었습니다.
전 5회입니다.
오세훈은 중동고에서 대일고로 전학와서 1년 선배 4회입니다.
공부가 신통치 않아 SKY 떨어자고 2차 대학 외대 법정학부에
다니다가 고대 법대에 편입하고 사시 됩니다.
당시 서울대에 버금가는 곳은 연대 상대와 고대 법대 뿐이었습니다.
박근혜가 다니며 새로 떠오른 서강대는 법학과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세훈 선배의 변신과 기회 창출은 눈부셨습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제일 약했음에도
홍준표와 맹형규에 역전하고 후보가 되었습니다.
당시 역전승을 기획하며 대일고 동문들이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웠습니다.
아직까지도 정치는 동원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