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이 안땡겨지네요..
아주 건조한 지옥이 시작되었어. 와이프는 하루를 거의 기절하듯이 울면서 빌고 다음날은 죽기 직전인 사람처럼 눈만 뜨고 있더라. 어느 순간 잠들어 있길래 이불 덮어줬는데 갑자기 눈을 뜨더니 날 쏘아보기 시작했어.
"자기는 아무렇지 않아?"
실소가 나왔어. 내 반응이 너무 건조한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그 특유의 말투로 힐난했어.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내가 너무 이상하대. 자기가 잘못한건 맞지만 사람 취급은 해달라더라. 차라리 화를 내달라면서 또 울길래 다 듣고 있다가 내가 나간다고 했어.
짐을 싸고 건조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서 나오는데 와이프가 허탈하게 웃더라. 이 상황에 그걸 버릴 생각이 나냐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냐고 물어보면서
"항상 나만 나쁜x이지. 그래 내가 다 망쳤어. 그런데 너 진짜 이상해. 왜 이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라고 하는데 즉각적으로 대답을 했어. 항상 생각을 하고 대답하느라 약간의 딜레이가 있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반사적으로 입이 움직이더라.
"알아야해?"
세번 쯤. 입술을 달싹이고 손톱을 세번 쯤 뜯고는 주저앉더라. 미안하다고 받아 줄거냐기에 하지 말라고 했어. 차 앞에 멍하니 서서 10분쯤 있었던 것 같아. 난 '멍 때린다'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왜 하는지 알게 되었어. 머리를 비우니까 편해지더라고.
갈 곳은 없었지만 차를 몰았어. 보이는 도로에서 직진만 하다 보니 왠 공단이 나오길래 담벼락에 차를 대고 허리를 젖혔는데 눈뜨니까 다음날 이였어.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지만 연락은 없었어. 팀장님께 전화했더니 질책 대신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어. 적당히 변명 하려했는데 요 며칠 너무 이상했다고 급한 일 없으니 연차 몰아써도 된다고 하시더라. 오후에 출근했지만 다시 같은말 하시길래 사정 설명 드리고 쉬기로 했어.
저녁이 되고 와이프한테 연달아 전화가 왔어. 세 번 쯤 넘기다가 받았는데 집으로 와달래. 안오면 자기가 무슨 짓 할지 모른다고 소리 지르길래 결국 갔더니 그 동안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던 것들을 펼쳐놓더라. 카톡은 출력까지 해놨었어.
회식 때문에 규칙어기고 늦게 귀가한일. 음력인 장모님 생신 잊었던 일. 첫 결혼 기념일날 가기로 했던 레스토랑 예약 안해서 싸웠던 일. 결혼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 내가 사료 잘못줘서 입원해야했던 일 등등
하나하나 다 언급하더니 갑자기 무릎 꿇으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것 밖에 없었다.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되버려서 저런것들로 불행하다 느끼고 그 남자에게 속풀이 하다가 선을 넘고 돌아오지 못했다. 평생 내 잘못 잊지 않겠다.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더라. 눈도 못 마주치고.
화도 나지 않았고 슬픔도 없었어. 그런데 역겨움은 남았더라. 창문을 열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난간을 잡고 올라 가려했어. 와이프가 놀라서 잡더라.
자기가 잘못했다고
이러지 말라고
하란대로 다 하겠다고
싱거울 정도로 무난하게 쭉-지나갔어. 모든게 그대론데 그 사람만, 아니 그 사람과 몇가지 가전만 사라진 상태가 되더라. 딱 자기가 가져온 것만큼만 들고나갔고 장인 장모님과는 죄송합니다 통화 한번이 전부였어. 엄마는 그저 안아만 주셨고.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어. 다소간의 혼잡함이 있었지만 인생의 이벤트 중 하나로,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믿었어. 일어나서 출근했다 퇴근하고 티비보다 잠드는, 아 목요일과 토요일엔 복권을 사는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쭉-이어질 거라고.
팀장님이 부르시더라. 힘든건 아는데 일은 프로답게 하자고. 엉망이었거든. 난 분명히 평소처럼 했는데 자료가 엉망이였어. 특히 숫자가. 정말 간단한 덧셈도 잘 안되더라. 웃긴건 주변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는거야. 팀장님도 나한테 한소리 하시고는 퇴근쯤에 오히려 사과하시더라. 난 이유를 몰랐어. 정말 친하게 지내던 타부서 선배가 정말 굳은 표정으로 말해주기 전 까진.
내가 이상하대. 걷다가 갑자기 몇초간 우두커니 서있고 서로 눈을 보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허공을 보고 한참 자료정리 하다가 미친놈마냥 머리를 오만군데로 돌렸다더라. 말은 그렇게 안했지만 내가 미친 것 같다-그거였어.
아직도 기억해. 맞은편 의사 선생님이 제법 큰 목소리로 30,29,28...,25,24..19-
분명 하나씩 카운트 하시는데 중간 기억이 없었어. 혼동한게 아니야. 그냥 없었어. 테스트 동안 나를 찍은 영상을 보여주시는데 30초 카운트하는 그 짧은 순간에 쉴새없이 눈을 깜빡이더라. 그냥 깜빡이 아니라 깜빠바박. 경련하듯이ㅎㅎ
6개월 넘게 치료를 받고있어. 퇴사했고 인척분 공장에 들어왔어. 재택근무 라지만 사실상백수야. 가장 심했을때는 ‘고맙습니다.’를 ‘고맙-2초-습니-1초-다.’로 말했어. 억지로 ‘고맙습니다.’하면 과호흡이 왔어. 마치 내 몸이 기능하는걸 거부하는 그런 느낌.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눈물이 나지 않아. 기쁘지도 않고. 그냥 모든일에 그래. 감정을..그래 거세당한 것 같아.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단절되더라도 놀랍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셨어. 외면하고 모른척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더라. 느릴수는 있지만 끊임없이 나를 파먹을거고 종국엔 삼켜질거래. 아주 순화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의미는 다르지 않았어. 그래서 소설을 썼어. 모든 설정과 전개가 간편화 된 채 독백만 있는 삼류소설
이건 소설이야.
의미가 없다.
가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