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니
선조의 시기와 경계 그리고 신료들의 모함으로
사형 직전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이순신은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의 처벌을 받는다.
곧이어 원균이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니
선조와 신료들은 이순신을 통제사로 재등용할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함선이 단 한척도 남지 않았음을 안 선조는
이순신에게 육군으로 편입할 것을 지시하나
이때 이순신이 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라는 상소는 명성을 떠나 그 절실한 심정을 느낄수 있다.
통제사 복귀시 사실 배는 한척도 없었다.
조선 수군 모든 전력인 160척의 판옥선과 3척의 거북선이
칠천량 해전 한방으로 다 사라진거다.
왜적은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해도 절반 전력
정도는 후퇴하고 항상 보존했었다.
이 부분이 난 원균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칠천량 해전 대패는 7월 16일이고
이순신이 선조의 사과 겸 재임명 조서를 받은건 8월 3일이다.
그사이 안위, 배설, 배흥립이 합류하고 8월9일 우치적
8월11일 송희립과 최대성이 합류하고 8월18일
회령포에서 배설이 끌고 도망쳤던 판옥선 10척을 확보한다.
그후 추가로 2척 그리고 또 한척 실지로 13척이 되었다.
불과 몇일후 왜놈 함선이 300척 가까이 집합한다.
그리고 9월 16일 133척의 왜선이 해남괴 진도 사이
명량해협에 진격하며 10:1 본격적 해전이 시작된다.
왜놈 수군 목표는 이미 궤멸된 조선 수군을 싹쓰리하고
서해를 거쳐 한강 유역까지 진입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