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왕실과 혼인할수 있는 법적으로 규정한 15개 가문이 있었다.
여흥 민씨가 그 가문중 하나였고 신흥 귀족 이성계 집안과는 급이 달랐다.
그리고 당시는 여자가 더 쎈 남녀가 평등했던 시절이다.
민제는 고려 말기 예의판서, 도평의사사 그리고 나중 성균관 책임자였다.
16살 이방원의 성균관 스승이었으며 방원을 무척 아낀 민제는 신분을 떠나
미천한 집안 이성계에게 중매를 넣고 18살 민제의 딸과 혼인하게 된다.
혼인후 이방원은 17세에 급제하며 무식한 무인집안 이성계에 힘을 실어준다.
방원은 항상 원경의 손바닥 안이었고 탈출할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2살 연하 방원은 부인을 무척 사랑했다.
기록에 따르면 원경은 무척 이쁘고 수려했으며 학문도 있었다 한다.
딸들은 살고 아들은 계속 죽고 나이 서른 혼인 12년만에
낳은 아들이 살아남으니 그가 나중에 폐위되는 양녕이다.
1394년 양녕, 1396년 효령 그리고 1387년 충녕을 낳으니 이가 세종대왕이다.
모두 왕자의난 이전 민씨 집안에서 처가살이할때 정안군 신분으로
만든 자식들이며 민씨 일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건 자명하다.
1400년 12월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고 1401년 2월 원경왕후가 즉위한다.
36살에 왕후가 된 원경은 마흔살에 막내 성녕대군까지 낳으니
태종과 왕비의 갈등 이야기가 아리송하긴 하다.
1420년 세상을 떠나고 12일만 상복 입고 상을 치르라는
상왕 태종의 말을 세종은 처음으로 거역하고 제대로 상주를 한다.
1422년 태종도 승하하니 그 두분은 우연히도 55세에 죽었고
세종의 바램으로 두분이 합장된 무덤이 내곡동 헌릉이다.
세종 이도는 1450년 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