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202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안점검을 할 당시 “선관위가 보안점검을 방해한다”고 대통령실에 보고한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이 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하기로 결심한 데에 그 내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전·현직 국정원장뿐 아니라 국정원 실무진까지 줄소환 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일보가 10일 입수한 ‘선관위의 보안점검 비(非)협조 사례’ ‘사전투표용지 인쇄 테스트 프로그램 확인 경과’ 등 국정원 문건 2건은 2023년 10월 대통령실에 보고됐다. 선관위에 대한 ‘엄정 수사’가 필요하다고 대통령실이 결론을 낸 것(문화일보 2024년 1월 6일자 1·5면 참조)에 앞서 자료 제공을 한 것이다. 국정원은 선관위가 △점검 시간제한 △장비 제공 지연 △점검 도구 삭제 △자료 제출 기피 △말 바꾸기 △북한에 해킹된 메일 계정 폐쇄 △방관적 태도 등으로 점검을 방해했다고 명시했다.
특히 국정원에서는 같은 해 8월 10일 백종욱 당시 3차장과 국가사이버안보센터장이 선관위를 직접 찾아가 김용빈 사무총장 등에게 강하게 항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김 사무총장은 “보안점검에 협조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으나, 그 이후에도 비협조 사례가 발생했다고 국정원은 문건에서 주장했다. 예를 들면 사전투표지를 출력하는 프린터 테스트 프로그램 제공을 국정원으로부터 요청받은 선관위는 “기존 프린터는 테스트 프로그램이 없다”고 답변했으나, 국정원의 조사 결과 그 프로그램이 2014년부터 사용돼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차 프로그램 제공을 요청받은 선관위는 내부 논의를 거쳐 “제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 등이 말 바꾸기 사례로 지적돼 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이와 관련된 국정원 실무진을 소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소환 조사한 조태용 국정원장에게도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 관련 내용뿐 아니라 보안점검에 대해서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에게 보안점검 결과를 직접 보고한 김규현 전 국정원장도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내부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보안점검 당시에는 선관위 비협조를 적극적으로 지적해놓고, 비상계엄 이후에는 ‘선관위 대응이 협조적이었다’는 식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조기 대통령 선거 등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대통령실 보고 관련 사항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국정원과 조율을 통해 보안점검을 협의했다”며 “국정원의 요구사항에 대부분 협조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