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일찍히 서양과 접촉을 하던 나라이다.
멀리보면 무려 무로마치 막부 시기에 접촉해
전국 시대와 에도 막부 시기에는 아예 서양인들의 거주 구역이 존재했을 정도
다만 에도막부 중기에 이르면 결국 모든 소통 창구를 닫고
쇄국의 길로 향한다.
그러나 대충 19세기 쯤 되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매우 벌어진다.
그러던 중 1853년
미국 해군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동인도 전대 소속의 전함 4척이
일본 우라가에 나타났난다.
결국 에도 막부는 아편전쟁에서 그렇게 거대했던 청나라가 오체분시 당하는걸 보고
개국을 결정하고 미일화친조약을 맺는다.
이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 같은 열강들도
일본에 이권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어쨋든 당시에는 힘이 없던 일본이기에
이들의 비위를 맞추며 일단은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 내에서도 막부의 이런 행태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많았다.
주로 에도 막부에게 불공정한 대접을 받은
에도, 즉 도쿄에서 먼 지역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주로 규슈 섬에 있던 사쓰마 번과 혼슈 섬에 있던 조슈 번
시고쿠 섬에 있던 도사 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1868년 2월
오사카 근처의 사카이에 프랑스 해군 수병들이 상륙한다.
조약 상 이곳은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이었지만
프랑스 수병들은 이런 사항을 좆까버리고
술쳐먹고 여자를 성희롱 하는 등 아주 깽판을 쳐버린다
근데 이곳에는 도사 번의 보병대가 주둔하며 치안 유지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얘네는 진짜 서양인을 끔찍하게 혐오하는 존왕양이파 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열이 뻗치지만 일단을 말로 함선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이 미친 프랑스 수병들이 오히려 도사 번 보병대의 군기를 빼앗아 달아난다.
이에 빡친 보병대이 기수 대장이 도망가는 프랑스 수병에게
쇠갈고리를 던져버리고, 그 수병의 머리가 터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 때문에 도사번 보병대와 프랑스 수병들간의 총격전이 발생했고
프랑스 수병 11~13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도사 번 보병대와 프랑스 군 사이의 전투화
당연히 프랑스는 빡친다
지들이 잘못한 건 쏙 빼놓고, 프랑스는 공사를 보내서 일본 조정에게 선포하는데
1. 도사 번의 번주가 직접 사과할 것
2. 당연히 일본 정부는 배상금을 지불 할 것
3. 사건의 당사자인 도사 번 보병대 20명을 사형에 처할 것
에도 막부는 열강인 프랑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가뜩이나 막부와 서양을 ㅈㄴ게 싫어하던 이들은
서양 때문에 막부가 그저 임무를 수행한 자신들에게
사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개빡쳐버린다.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자, 이들의 사형 집행권을 갖고 있었던
도사 번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할복을 허락한다.
여기서 할복은 검으로 배를 갈라 죽는 자살, 혹은 처형방식이고
배를 가르면 대기 중이던 가이샤쿠가 신속하게 목을 쳐서 고통을 없애준다.
할복은 오로지 사무라이만 할 수 있었고
당시 일본 내에서 가장 명예롭고 품위 있는 처형 방식이었다.
근데 알다시피 종이에 베여도 아픈데
맨 정신으로 스스로 배를 갈라야 된다는 게 문제다.
고기를 잘라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스스로 배를 가르기에는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럽다
게다가 고통과 공포로 깔끔하게 배를 가른다는 것 자체가 웬만한 담력없이는 힘들다.
그래서 에도 시대 쯤 되면 그냥 칼 대신 부채로 긋는 시늉만 하거나
칼로 약간만 상처 내고 바로 목을 쳐버리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아무튼 참수형 보다는 훨씬 명예롭고, 무사로서의 완벽한 최후인 할복을
이들은 받아들인다.
1868년 3월
묘고쿠 사에 프랑스 공사 레온 로슈, 영국 외교관 대표 어네스트 사토
그리고 양국의 외교관 직원들과 프랑스 해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상 최초로 외국인 앞에서의 할복쇼가 펼쳐진다.
근데 문제는 이 때 할복자들인 도사 번 보병대원들이
젊고 혈기왕성한 나이이며 존왕양이 신념에 가득차 있던 상태였는데
이들은 게다가 하급 사무라이 출신으로 성격과 행동이 과격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외국인 앞에서 할복하는데
자존심 때문이라도 진짜배기 할복을 저 망할놈들에게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대충 참수형을 예상한 서양 코쟁이들 앞에
진짜 똘기 충만한 전국 시대 유혈 낭자 할복쇼가 펼쳐진다.
최초의 할복자인 미노우라 이노기치는
진짜 이게 실화인지 의심될 정도의 유혈이 낭자한 할복쇼를 보여주는데
야 프랑스 공사!!!!
지금 부터 잘봐라!!!
이렇게 외친 미노우라는
배를 일격에 가르고 손을 넣어 창자를 꺼내 들어올린다
근데 이런 끔찍한 할복은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도 살면서 처음봤고
당연히 너무 쇼크에 빠진 나머지 목을 칠 때 제대로 적중하지 못한다.
일반 사람이라면 끄아아아악 하면서 뒹굴겠지만.....
좀 더 침착하게 쳐라!!!!!!!
즉 개시부터 이 미x놈은 배를 갈라 스스로 내장쇼를 보여주고
2번의 칼질에도 안 죽어서 장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다시 쳐라 라고 외치며
3번 만에 죽는다.
이 첫 할복부터 프랑스 공사인 포슈는 멘탈이 붕괴되어
새파랗게 질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온갖 똘기 넘치는 할복쇼를 선보여주는데
어떤 사무라이는 배를 열십자(十)자로 그어서
창자가 땅에 쏟아지는 연출을 해주거나
어떤 새끼는 맨정신에 내장을 꺼내서 정렬한 다음
피 묻은 손으로 바닥에 "나 죽는다"라고 쓴 다음
그 내장을 관전 중인 프랑스인들에게 집어 던지거나
어떤 놈은 한번 가르고도 만족을 못해
다른 방향으로 한 번 더 긋는 등
진짜 엽기적일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미친 장기자랑 할복쇼였다
레온 로슈 프랑스 공사는 아예 할복쇼 도중 현장에서 탈출해버렸고
어떤 프랑스 장교는 현장에서 구토를 했을 정도
당사자인 프랑스 공사가 빤스런을 쳐버리자
도사 번은 일단 형 집행을 멈춘다.
아무리 봐도 미친 것 같다
(내장을 꺼내 프랑스인에게 똑똑히보라고 내던지는 사무라이)
당시 11명이 할복하고, 9명이 대기 중인 상황
로슈 공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감탄스러우나 너무 극혐이라 볼 수 가 없다"
라고 전하며 9명의 목숨을 살려주도록 건의한다.
그리하여 남은 9명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는데
말이 유배형이지 갈 때 허리에 칼 차고 가마 타고 가는 등
극진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1년 뒤에 메이지 천황 즉위를 핑계로 모두 사면된다
로슈와 이 장기자랑 할복쇼를 같이 본 영국 외교관 직원 어네스트 사토는
"온 힘을 다해 이 형벌을 입회하는 일에서 뒷걸음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라고 밝힐 정도로 이 때의 할복쇼는 그야말로 고어물 중의 고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