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파발 사신당에 있다는 사도세자 초상화.
19세기 순조 때의 작품으로, 그린이 이름은 미상. 무속의 신 영정이라 불교그림풍으로 그려진 느낌이 든다.
사도세자 이외에도 무속에서 신으로 모신 임금 영정 중에는 단군왕검, 김유신 장군, 조선 태조 이성계 영정, 단종대왕 영정, 최영장군 영정도 있음.
사도세자의 초상화를 보면
눈꼬리 끝이 올라간 것은 아버지 영조임금 초상화와 비교하면 눈매가 비슷해 보인다.
얼굴에 살이 찐 것은 1744년도 영조실록, 승정원일기에 아들이 살 찐것을 지적한 부분과도 일치하는 대목
사도세자 스토리를 극화, 영화화하는데 부자간의 갈등, 사도세자의 정신병, 영조의 괴팍한 성격만을 초점으로 했지, 당시 주변상황을 포괄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점이 있다.
영조의 태생적인 열등감들(경종 독살 의혹, 무수리의 아들, 이모비야, 게장, 꿀, 생감 등에 얽힌 사연)
20대 때 얻은 첫 아들이 9살에 죽고 40살 넘어서 얻은 둘째아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히스테리. 그로 인한 아들의 우울증과 정신질환
세자가 궁궐 주변에 땅을 파놨다가 들킨 사연. 이 부분은 한중록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땅을 판 목적은?
똑똑한 세손을 보고, 미쳤거나 모자라게 봤거나 뭔가 많이 마음에 안드는 아들을 바라보는 영조의 속마음.
처벌받을까봐 무서워서 일부러 자기아들 세손의 겨울 털모자를 쓰고 미친척 하려다가, 혜경궁한테 모자 빼앗긴 일.
영조가 자기 이복동생 연령군은 죽은 뒤 양자까지 들여주고 그 양자 결혼까지 봐줄만큼 챙겨줬지만, 사도세자가 첩한테서 얻은 은언군 은신군은 나몰라라 야박하게 외면한 일.
뒤주에 가둘 당시 어린 세손을 안고 수문장들을 밀치고 들어간 장군 이석문
이석문 장군을 따라 들어온 세자시강원 관원 윤숙, 임덕제 등
사도세자의 뒤주의 틈사이로 누군가가 물과 음식을 넣어주다가 적발된 사연
뒤주를 지키던 구선복 등
아무도 믿을수 없다고 본 사도세자가 형수 현빈의 친정오빠 조재호에게 도와달라고 편지 보내다가 발각되고, 조재호의 조카 조유진은 매맞아 죽고, 조재호도 유배된 다음에 사약 받음. 사도세자는 자기 처가를 의심해서 결국 형수의 친정에 도움 요청.
혜경궁이 친정삼촌 홍인한에게 세손이 후계자가 될 것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편지를 받았지만, 홍인한은 무시하고 세손을 반대한 일. 이 역시 한중록에 숙부님께 편지를 보내서 알렸는데 듣지 않았다고 혜경궁이 기록함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를 다루는 작품들 중 이런 주변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없거나, 부족한게 많이 아쉬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