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를 비판하면 "걔들이 무슨 좌파냐? 걔들이 좌파면 파리가 독수리다" 이런 식의 반응이 가끔 나온다. 이건 좌파는 원래 정의로운 무리인데 일부 사기꾼들이 좌파를 참칭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친노 무리들 비판했더니 "걔들이 무슨 친노냐? 친노를 참칭하는 칭노(稱盧)일 뿐"이라며 친노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트랙터 시위에 나선 농민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가끔 보인다. 그 사람들이 무슨 농민이냐? 농민을 참칭한 무리일 뿐이라는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반응이 정말 문제라고 본다. 농민은 선하고 순박한 존재들이고 정치적인 계산 같은 것 할 줄 모르는, 존재론적인 약자로 상정하는 논리들이다.
한국에서 끔찍하게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단어가 '농자천하지대본'이다. 오늘도 포스팅하기는 했지만 아니 전국민의 4\%도 안되는 인구에 전체 GDP의 2\% 미만의 기여도가 어떻게 천하의 대본(大本)이라는 말인지. 신토불이니 뭐니 하는 단어도 비슷하지만 나는 저런 정서의 근원은 조선시대라기보다 엠비씨가 장기 방영한 전원일기의 영향일 것이라고 본다.
이번 트랙터 시위의 양상이나 주장을 보면 농민들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환상을 내재화하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자신들이 한번 나서서 뭔가 주장하면 전국민이 공손하게 경청해야 한다는 자신감. 농촌이 전국민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질기게 유지되는지, 이런 착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농민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에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단어가 너무 역겨워 농자오염지대본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한 적도 있었다. 농가에서 엄청나게 사용하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보면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뿐이랴? 곳곳에서 가축의 분뇨를 쏟아내는 축사들은 또 어떻고?
농업 자체는 당연히 살려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농토와 농업에 자본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 예산으로 보조금 따박따박 따먹으면서 농민이라는 딱지를 내걸고 자신들을 사실상 공무원 대우해달라는 억지를 무너뜨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트랙터 시위하는 무리들이야말로 진짜 농민이 아니다. 이들을 농민 취급해주면 안된다.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뤄지고 첨단 IT로 무장한 우리나라 농촌에 진짜 21세기의 농민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ㅡ제3의길 주동식 전 편집인님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