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 장군은 러일전쟁의 승부를 가른 뤼순(旅順)전투를 지휘해 러시아 요새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그 작전은 5개월이나 걸렸고, 6만 명이 넘는 엄청난 사상자를 남겼다. 그의 두 아들도 전사했다. 개선하여 메이지 일왕을 만났을 때, 노기는 대량의 전사자가 난 걸 사죄하며 죽기를 청했다. 메이지천황은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라며, 정 죽겠다면 내가 죽은 다음이라면 허락하겠노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유서에는 다른 할복 이유가 적혀 있다. “제가 이번에 폐하의 뒤를 따라 자살하는 점,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유서에서, 노기는 1877년 서남전쟁(西南戰爭·사이고 다카모리 지휘하에 사쓰마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던 중, 사쓰마군에게 군기(軍旗)를 빼앗긴 일을 사죄하며, 그 후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천황의 죽음을 기회로 마음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유서에는 또 두 아들이 전사한 후 주위에서 양자를 들여 가문을 이으라고 간청했지만, 자기는 그럴 생각이 없다며 노기가(乃木家)를 반드시 폐절(廢絶)시키라고 했다. 의아한 것은 부인 시즈코가 살아있다는 걸 전제로 해서 쓴 구절들이다. 재산 처리 문제는 시즈코와 상의하라든가, 시즈코가 살아 있는 동안은 가문을 유지해 달라든가, 노인이 될 시즈코가 살 집을 걱정한다든가 하는 대목들이다. 아마도 유서를 쓸 당시에는 부인이 함께 죽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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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당시 고지전의 막대한 피해로 죄책감에 시달린 노기장군은 할복으로 생을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