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
국지전도 아니고, 테러도 없는데 뜬금 계엄을 선포하고
엉성하고 급한 작전 실행 그리고 국회 표결 후 바로 후퇴까지....
아무리 ㅂㅅ이라도 올해 4월부터 계획한 것 치고는 스타트 시점이 너무 뜬금없다.
그래서 추리를 해 보니 얼추 알듯 하다.
다시 타임 테이블을 맞춰보자.
드러난 정보를 다시 맞춰 보면,
계엄 모의는 4월 부터 시작.
실무 기획은 노상원이 김건희 양아버지를 세종호텔에서 만나 논의를 한 시점이니 여름이다.
이후 정보사 사령관과 실무대령과 롯데리아 접선
11월 중순 특임 요원 작전 투입
여기가 중요한 대목인데
11월 중순부터 청주 팀은 작전지역 인근에서 대기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의 작전 팀은 현역 군인이 아닌 블랙 요원들
계엄의 밤 이틀 뒤
미국 하원 의원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 계엄군이 미국의 어떤 시설물을 공격 해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공개 했을 것이다. 라고 멘트
즉 계엄 발표 훨씬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계엄 발표는 원래 사드 미군 기지에 대한 테러 가 발생한 이후에 발생 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약속된 작전 시간이 지나도 테러가 발생하지 않자
실패 이유를 확인 하기 위해 우왕 좌왕 했을 것이고.
더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정보가 셀 것이라는 우려에 급하게 계엄령을 발표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바침 하는 것은 707 부대의 비상 대기 이유가 북한 테러 관련이었다는 증언 그리고 대 테러 전문 707의 투입 은 원래대로 라면 국회가 아니라 테러가 발생했어야 할 사드 기지 쪽이었지만 계획이 어그러지자 국회 쪽으로 급히 변경 했을것.
그러면 미 대사의 긴급한 핫 라인을 씹은 이유도 설명 된다.
국회에서 순순히 철수 한 것은
미국 백악관의 경고와 압력이 들어왔을 테고
다행히 테러도 발생하지 않았고 사망자도 없으니 지금이라면 되돌리고 오리발을 내밀면 될것이라 판단 했을 것.
작전 실패의 원인도 요원들의 망설임으로 인한 항명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바람에 2차 혹은 3차 작전 팀인 청주 팀은 실종된 사드팀의 행방을 찾느라 방치되게 되었고 5일이나 지나서 연락을 하였을 공산이 크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대로 라면,
아마도 테러 실행 전 팀장 급에서 미군에 체포 되었던가
요원 들이 독립 안가에서 대기중에 미군에게 체포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윤석열 탄핵과 체포 후 새로운 정부와 이 비밀 증거를 가지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여 협상용 카드로 사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 국힘당과 한덕수 등 친일파 간첩들의 결사 항쟁에 의하여 도리어 민주당이 역습을 당하고 윤석열이 복권 될 징조가 보이게 된다면
미국은 가지고 있는 카드를 공개하여
비밀리에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대놓고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와 협상을 택할수 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포인트는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 계엄군 블랙 요원의 신병 과 테러 시도 증거 일 것이다.
물론 도청 등 비 공개 정보 자료는 국제 관계 때문에 공개할수 없겠지만 한국 국정원과 차기 대통령에게는 증거로 제시될 것이다.
이번 사태의 전말이 공개 된다면,
비공개 협상 보다도 훨씬 최악의 여파가 대한민국을 강타할 것이다.
윤석열의 추잡한 버티기 수작은 마지막 까지도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