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지역에 의해 2차 세뇌된 청년층 까지도
민주당을 위시한 진보계 모두가 공산주의에 경도된 자유 민주주의 의 적 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들은 주입된 사상에 물들어
스스로 진실을 알아보려 노력한적 조차 없죠
그들의 철저한 세뇌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가장 대표적이자 확실한 예 로서
한사람의 인생 여정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장 증오하고 확실한 빨갱이라 믿고 있는 한 사람
그러나 사실은 미국이 작정하고 키우고 영국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준 한국의 정치인
미국과 영국 그리고 모든 자유 민주주의 서방 세계가 합심하여 도와줘서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한국이 북괴 김일성의 독재 국가 처럼 변해가는 것을 막으려 자유 서방 진영이 30년간 공들여 키운 한국 정치인
바로 김대중 입니다.
김대중 빨갱이 설은 크게 2가지로
첫번째는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작과 매표 그리고 개표 장소 정전후 선거함 뒤바꿔치기 등 극히 혼란했던 와중에도
김대중이 박정희에 겨우 90여만 표로 지면서 선전하자
놀란 중앙 정보부 이후락은 오사카 중정지부와 오사카 총영사관을 동원하여 조총련 세력과 접촉하여
몇몇 조총련 간부를 회유, 김대중 간첩 만들기 공작을 시작하게 되고 어용 언론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공안 정국을 유도합니다.
또한,
과거 제주 4.3. 사건 당시 경찰에 협조하여 이웃을 빨갱이라 허위 진술한 가족을 서울로 데리고와 살게 해줬는데
이들을 다시 한번 이용하여 보상을 미끼로 다시 한번 허위 유언비어를 서울 과 영남 등에서 유포 시키게 합니다.
이른바 6.25 당시 김대중이 인민군에 적극 협력하여 신안군 도서 섬 들에서 지주들을 죽창으로 학살했다는 내용 입니다.
황당한 것은,
김대중은 신안 지역 유지의 아들이자 자본가의 아들로
오히려 친일 사업가 지주의 자식이라 욕할 지언정
절대 빨갱이가 될수도 없죠
게다가 목포 상고 졸업 후 목포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자유당 경찰들과 공무원들과 어울려 다니던 사람 입니다.
목포의 인사이드에서 지역 유지의 아들로 엘리트 코스로
정치인이 된 케이스 입니다.
당시 미국 CIA 의 정보력은 박정희와 김일성의 오늘 빤쓰 색깔도 알고 있을 정도의 막강했던 시절인데
김대중의 정체와 지난 행적 쯤 모를까요?
어쨋든 이후락의 간첩 조작과 전국민 세뇌를 통해 국내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김대중은 밀항을 시도하는데
대한해협에서 김대중이 체포되자
이를 감시하던 미국은 긴급히 주일 미군 헬기를 급파
김대중을 체포한 한국 중정 요원과 경찰을 향해 위협 사격을 가하고 김대중을 내놓지 않으면 한국 중정 요원과 경찰 모두 사살 하겠다는 강수를 씁니다.
미국이 우방의 정권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사형이 언도된 정치인을 무력을 사용하면서 까지 구출 한 사건은 이 사건이 유일합니다.
어쨋든 미군 헬기에 의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김대중은
미국 정치계의 환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정치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때 만나게 된 미국의 명문 정치가들과의 교류와 친교를 맺고 독재 이후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 구성과 운영에 대해 미국에서 대학에서 학문을 공부하게 됩니다.
또한 여기서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고
미국의 지지와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세력을 구축하죠
박통 사망후 다시 국내로 돌아온 김대중은
다시금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가택 연금에 처하게 되지만
6월 항쟁 이후. 벌어진 대선에서
김영삼의 배신 이후 하나회 잔당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이를 감지한 영국 정보부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빙자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영국에서 그는 경제학과 금융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며
영국 여왕을 비롯한 유력한 정치인들 그리고 유럽의 지지를 얻게 되면서 IMF 경제 위기를 예견하고 그에 대한 여러 해결 방법을 연구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과 인맥이 IMF. 극복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대한민국은 쫄딱 망한 세계 경제 순위 40~50위권 개발 도상국이자 부도 국가에서
IT 와 문화 선진국이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초석을 마련하죠
그의 대북 정책 때문에 북이 핵을 보유 했다는 주장이 극우의 유일한 논리적 반박 이지만,
그것도 자세히 파헤처 보면 말짱 개소리 입니다.
미 의회에서 증언한 옥성소 씨의 증언과
80년대 초반부터 일본 국립 핵에너지 가속 연구소 에서 일본 정부가 작정하고 조총련 출신 물리학자와 학생들을 핵 개발 전문 연구자로 육성하여 북한으로 보내고 핵무기 전용 물자들도 민간을 통해 공급했으며 미국이 감시를 시작하자 갑자기 조총련을 탄압하는 쇼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즉 북한은 이미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10년 전에 우라늄 추출 기술을 일본에게 전수 받았고 전문 인력 까지 안정적으로 공급 받았으며 단지 핵탄두 무기화 과정만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초빙하여 해결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보수랍시고 자유 민주주의 를 외치는 사람들은
독재 빨갱이의 세뇌에 당하여 진짜 자유 민주주의자 들을 공격하고 북괴에 핵무기를 공급해준 일본을 찬양하는 대가리가 텅비고 무식한 주제에 적과 아군 조차 구분 못하는 ㅂㅅ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