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양극화 해소, 민생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질적 의미의 추경 검토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그동안 '건전 재정'을 앞세워 경기 변동 대응을 위한 재정 확대에 극히 소극적이었던 윤석열정부가 최근 경기 부진과 커지는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을 이유로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나오면서 그동안의 긴축 재정 기조를 대폭 수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2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추경 편성을 포함해 재정을 확대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한 차례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당시 추경 규모는 52조 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지금까지 야당의 거센 요구에도 추경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당정은 전날까지도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국가부채나 재정수지 등의 한도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재정 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이미 내년 예산안에 내수 경기 및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이 충분히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은 미래세대에 부담이 되고 대외 신인도가 악화할 수 있다"며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정부 내 가용재원을 활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임기 후반기 윤 대통령이 국정 기조로 내세운 '양극화 타개'를 이행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해졌다는 것이 대통령실은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임기 전반기에는 민간 주도 시장 중심 기조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면 후반기에는 양극화 타개로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생과 경제의 활력을 반드시 되살려 새로운 중산층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최근 부진한 경기 지표도 재정 정책 기조의 변화 유인으로 꼽힌다. 한은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2024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1\%에 그쳤다. 이는 정부나 한국은행의 전망치를 밑돈 결과다. 특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0.4\% 역성장했다.
결국 정부와 한은은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을 시사했고 국내외 기관들도 전망치를 낮춰 잡았다. 이달 KDI(한국개발연구원)와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우리나라 실질 GDP 성장률을 2.2\%로 0.3\%p(포인트) 내렸고, 내년 성장률은 2.0\%로 각각 0.1\%p, 0.2\%p 하향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재취임에 따른 관세·무역정책 변화 전망으로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경기 대응을 위해 추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거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편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글로벌 복합 위기에 따른 경기 부진, 이로 인한 양극화 심화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긴축 재정 기조에 집착하다 경기 대응 타이밍을 놓칠 경우 임기 후반기 국정 동력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윤석열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가 '확장 재정'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양극화 타개라는 임기 후반기 중요한 목표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재정을 쓰지만 방만하게 써서는 절대 안 된다"며 "정책의 효과나 정책 비용을 검토해서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그런 것들은 결정이 안 됐고, 여러 가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핀셋 지원 방식으로 재정의 역할을 늘려가겠다는 얘기다.
일단 내년 초 추경 추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677조 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이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만큼, 내수 부진과 성장 둔화 타개에 초점을 둔 예산을 추가로 반영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통령실의 추경 언급이 거대 야당의 예산안 삭감 '칼질'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추경 추진은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대규모 국채 발행을 피할 수 없어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은 내년 초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고 내년도 본예산 심의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추경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면서도 "다만 양극화 해소, 내수 경기 진작 부분에서 그런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이 든다. 정부 측과 교감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도 "현재 추경에 대해 논의한 바도, 검토한 바도, 결정도 한 바도 없다"며 ""재정 역할 하겠다는 것이 현금 살포하겠다는 차원이 아니고 어려운분들 핀셋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