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전남 진도 울둘목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병과 맞붙어서 승전한 날입니다. 조선수군은 45척의 전선으로 왜군 333척의 전선과 맞붙었는데 선봉함대는 조선군은 판옥선 13척이었고 왜군은 세키부네 133척이었습니다. 실제로 맞붙은 것은 조선군은 초탐선 32척이 교란을 했고 해전을 치룬 것은 판옥선 13척이었는데비해 왜군은 명량으로 진입한 133척 모두가 전선인 세키부네였습니다. 이중 31척이 침몰하였고 100척이 반파 돼 전투불능이 됐으며 고작 2척이 무사히 도주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왜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FN M1900 권총으로 3발을 명중시켜 사살했습니다. 첫 발은 오른팔 윗부분을 관통하여 흉부에 박혔고 두 번째는 오른쪽 팔꿈치를관통하여 흉복부에 박혔고, 3탄은 윗배 중앙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혔고 근처의 가와카미 도시히코와 모리 다이지로, 다나카 세이타로에게도 각각 1발씩을 명중시켰습니다. 아쉽게도 이토만 사망에 이르렀고 나머지는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1920년 10월 26일 만주 지린성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왜군을 상대로 완전히 승리한 날입니다. 왜군쪽은 1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으나 패전을 은폐하기 위해 11명이 사망했다는 황당한 보고서를 내놨을 정도로 처참하게 독립군에게 박살이 났던 전투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서 여대생을 끼고 24살짜리 여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술을 먹던 다카키 마사오가 차지철에게 부산과 마산을 탱크로 밀어 버리고 300만명 정도는 죽여도 된다며 헛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먼저 한 발을 쏜 것이 손에 맞았고 다음으로 다카키 마사오의 가슴에 명중을 시켰으나 총이 고장나 버려서 급하게 나가서 부하의 리볼버를 받아다가 차지철을 사살하고 다카키 마사오에게 헤드샷을 날려서 염라대왕에게 보내버린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