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4월 27일 전주성이 함락되었다.
"민영준과 민비의 몸을 쪼개기 전까지는, 골육이 분쇄되더라도 영원히 해산하지 않겠다"
동학군의 분노와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날은 조정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종이 역적 "김옥균"을 육시한 기념으로 잔치를 베풀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조정은 근심으로 가득찼다.
민영준이 고종과 비밀히 독대하였다.
ㅇ민영준 : 적 세력이 갈수록 확대되니, 이 사실을 청나라에 전보하여 원병을 요청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입니다"
ㅇ고종 : 대신들과 잘 상의하여 처결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ㅇ민영준 : 이미 원세개와 밀약을 했으므로 대신들을 불러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ㅇ고종 : 옳은 말이다.
고종과의 비밀 독대를 마친 민영준은 청군 사령관 원세개를 급히 찾아갔다
ㅇ민영준 : 상국과 소국은 통양일체(아픔과 가려움을 함께 함) 사이이다. 위급한 조짐이 있다면 오로지 대인이 원조해 주는 후의를 믿을 뿐이다
ㅇ원세개 : 귀국 문무관 중 토벌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오직 홍계훈 뿐인가?
ㅇ민영준 : 저 난적들과 싸우려 들지 않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ㅇ원세개 : 조선 장수라는 자는 하루 종일 걱정 근심 외에 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로 하여금 군사를 지휘하게 한다면 닷새안에 평정할 것이다.
3일 뒤에 다시 조정회의가 열렸다
민영준이 아뢰었다
"탐관오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심이 거칠어져 모두 억울하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동학도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난민이요 망명자일 뿐입니다. 이들을 설득하는데 그치고, 죽이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기강을 바로잡기 원하신다면, 속히 외국군대를 빌려서 이들을 초멸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여러 대신들은 청군이 참전하면, 일본군도 참전한다고 극구 반대하였다.
고종이 최후로 말을 하였다.
"반대 논의도 좋다. 하지만, 장차 벌어질 일을 헤아릴 수가 없고, 모든 대신들이 마땅히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하니, 청관에 이를 속히 알리도록 하라"
대신들 대부분은 반대하였지만, 고종은 어이없게도 대신들이 모두 찬성한다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청군의 원병을 요청토록 지시하였다.
고종의 명이 떨어지자, 외무대신 조병직(고부군수 조병갑의 사촌)이 긴급 전문을 청나라 이홍장에게 보냈다.
"조선의 전라도는 민풍이 사납고, 성정이 음험하고 간사하여 평소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라고 일컬어 지는 곳입니다.
몇 개월 사이에 동학에 붙은 교비 만여 명이 현읍 10여 곳을 함락시켰고, 북으로 잠입하여 전주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흉악하고 완고한 자들이 오랫동안 소란을 피우면 특히 우려할만 한데, 한성과 거리가 겨우 사백 하고도 수십리 떨어진 곳에서 북으로 잠입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경기지역이 요동 칠 것이니 손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임오년과 갑신년에 두차례 내란이 일어났을 때, 모두 중국 병사들이 평정해 주었습니다. 청컨대 번거롭더라도 귀 총리(원세개)가 신속히 북양대신에게 전보를 보내면, 몇 개 부대를 보내어 속히 와서 대신 토벌케 하고, 조선 병사들로 하여금 군무를 익히게 하여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사나운 교비들이 섬멸되기를 기다려 즉각 철수를 청할 것이며, 감히 계속 머물러 지켜주기를 청하여 천조 병사들이 외지에서 오랫동안 피로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청컨데, 귀 총리가 조속히 적절하게 조력할 방안을 강구하여 급박한 형세로 구원하기를 절실하게 기다립니다"